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 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로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우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양 좋았다.
깨꽃은 얼마냐 예쁘더냐,
양파 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뿌리며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김진홍 아침단상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