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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교수, 생전 SNS "이것이 나의 일"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힘겨운 치유여정 함께" 적어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환자가 의사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숨진 임세원 교수(47)가 마지막까지 의료진들의 안전을 살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일 경찰과 병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5시44분쯤 피의자 박모씨(30)가 진료 도중 흉기를 꺼내 임 교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박씨를 피해 달아나던 임 교수는 복도에서 넘어지면서 박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임 교수는 도망치던 중에도 간호사들이 안전한지를 계속해서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일단 먼저 상황 전파를 하셨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면서까지 간호사들을 챙기셨다"고 전했다.
임 교수는 생전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헌신해 온 전문가였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관련된 학술논문 10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하는 등 관련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지난 2016년에는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담은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펴냈다.
또 지난 2011년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 2017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대상'을 받았다.

 

◇유족 "마음 아픈 사람들이 쉽게 도움 받는 사회를"

 

임 교수의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동료 의사들이 힘써 줄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임세원 교수의 동생분이 함께 모은 유족의 뜻을 말씀해주셨다"며 "이 두 가지가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하며 선생님들께서 이를 위해 애써 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폭력에 노출된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불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청와대 홈페이지 내 국민소통 광장 코너에 등록된 '강북 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에는 2일 오전 11시 기준 3만327명이 참여한 상태다.

 

청원자는 "병원은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다양한 의료 관련 직종이 종사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는 공간"이라며 "이런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에 성심을 다하려는 의사를 폭행하고 위협하고 살인하는 것은 치료를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호소했다.    

 

 

고(故) 임세원 교수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글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였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 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 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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