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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중소기업 젊은이들의 절망감 -주동식

-중소기업엔 미래가 없다. 오너 일가나 친인척들이 인사나 회계 등 중요한 보직 독차지
-사적소유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 의식, 친인척을 핵심 보직에 앉혀 경영권 보호에 나서
-기업은 천사 아니지만 사회 진보의 주인공. 문명의 성취, 관료보다 기업가정신의 소산

 

중소기업에 취업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좀 읽은 적이 있다. 주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기사 댓글 등에 올라온 얘기들이라 체계적인 담론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증언들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불만은 중소기업 일자리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너 일가나 친인척들이 인사나 회계 등 중요한 보직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평범한 직원들은 그저 값싼 노동력으로 쓰이다가 나이들어 쓸모가 없어지면 그걸로 끝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증언들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내가 일해 본 몇몇 중소기업들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중소기업 오너들은 굳이 친인척을 핵심 보직에 앉히려고 할까? 그들이 저능하고 도덕적으로 허접해서 그럴까? 그게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인력들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사회 전반의 신뢰자산이 워낙 빈약하기 때문에 그나마 가장 배신의 우려가 적은 친인척들을 핵심 보직에 앉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심 보직에서 일을 망치면 기업은 순식간에 몰락한다.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기업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다. 우리나라는 창업자 등 기업 오너십에 대한 보호가 극히 취약하다. 거의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너 일가의 사적 소유권을 적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고, 사적 소유에 대한 공격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려는 강한 움직임이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율 상속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사적 소유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을 의식하기 때문에 기업주들은 그나마 가장 근원적인 친연 관계인 친인척을 기업 핵심 보직에 앉혀 경영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려고 든다. 대기업들은 그래도 이런저런 전문인력과 계약을 맺고 나름 보호장치를 마련하지만, 조건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그조차도 어렵다.

 

결국 이것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 기업이 전향적으로 좋은 인재를 쓰기보다 방어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친인척 위주로 경영을 하다 보니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는 기회를 찾기 어려운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핵심 보직에서 일할 기회를 찾기 어려우니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

 

구의역 사고, 태안 김용균 사고에 이어 지난달 광주의 재활용업체에서 발생한 청년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서도 노동계나 여론은 사업주만 죽일 놈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지만, 이 문제도 좀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구의역 사고나 태안 김용균 사고는 다른 요인보다 선배 노동자들의 직업 윤리 타락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정규직이 할 일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모른 체했고, 선배 노동자로서 주의 사항을 후배들에게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은 데 근본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주 재활용 업체의 사고는 결국 투자의 부진과 그에 따른 생산현장의 저열화가 그 핵심 원인이다. 인천국제공사의 무자격 임시직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복지라는 명목으로 유권자들 표 사는 데 엉뚱하게 돈이 쓰이니 생산현장 고도화에 쓸 돈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청년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기업체의 선배 노동자들 역시 능력과 실적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니 후배 노동자들을 오히려 경쟁상대로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일도 가르쳐주지 않고 비극적인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기업과 기업주들에게 제대로 된 고용과 해고의 자유가 주어지고 경영권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주어져야 근본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엉뚱한 데 돈이 쓰이는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하지만 그 합리성은 사회가 법적 제도적 문화적으로 기업에 강요하는 조건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기업들이 힘을 합쳐서 그런 사회의 불합리성에 저항하고 승리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들은 망하고 기업주는 몰락한다. 그런 희생을 감수하는 기업이나 기업주는 없다.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의 합리성, 이것이 기업의 숙명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기업주들의 발목을 옭아매는 족쇄를 수십 개씩 채워놓고도 “제대로 뛰지 못한다”며 윽박지르고 “기업주들이 만악의 근원”이라며 몰아가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기업주들이 천사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기업과 기업주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만들어주고 나서 책임을 묻더라도 물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기업이나 기업주는 천사가 아니지만, 사회를 합리적으로 만들고 진보시키는 주인공들이다. 이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IT도 모두 기업가 정신의 소산이지, 선비 정신이나 관료 정신의 소산이 아니다.

 

이 나라는 그런 기업가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하면서 기업가들에게 그 비합리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걸 고치지 못하면 한국의 몰락은 필연이다. 지금 잘 버티고 있지 않느냐고?

 

지금 한국이 그나마 잘 버티는 건 과거 기업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분들의 활약 덕분이다. 남이 쌓아놓은 것 걸신들린 것처럼 차지하면서 온갖 정의로운 행세는 혼자서 다하고 나라를 망치는 존재들, 그들 덕분이 아니라는 얘기다. (글 :주동식)  [출처 : 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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