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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상 최대 103만 시위, 발단은 ?

대만서 임신한 여친 살해 하고 홍콩 도주
인도협약 없어도 중국 송환 가능 법안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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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6월 9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의 입법회(의회) 심의에 반대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이 엄청난 정치 사태의 발단은 20대 홍콩인이 대만에서 저지른 치정 살인 사건이었다. 지난해 2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만 타이베이(臺北)의 한 여관에서 홍콩인 찬퉁카이(陳同佳·20)가 함께 여행 중이던 여자친구 판샤오잉(潘曉穎·사망 당시 20세)을 치정문제로 살해했다. 그는 다음날 시신을 트렁크에 넣어 역 주변 공원의 풀밭에 유기한 뒤 홍콩으로 달아났다. 두 사람은 그해 2월 각각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뒤 2월 8일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13일 사건이 발생한 호텔에 투숙했다. 

 

대만 경찰은 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판샤오잉의 부친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들어가 CCTV를 통해 찬퉁카이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대만 당국의 연락을 받은 홍콩 당국은 3월 13일 그를 체포했다. 홍콩 경찰은 심문 끝에 그로부터 범행과 시신 유기 장소를 자백받았다. 대만 법의학자들은 판샤오잉이 임신 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남은 것은 기소와 재판, 처벌뿐이었다. 하지만 사건 경위가 이렇게 명백하게 밝혀졌는데도 처벌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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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를 범행 지역인 대만으로 송환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대만 당국은 찬퉁카이의 신병을 인도받아 타이베이에서 살인죄로 기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고 있어 홍콩 당국은 그를 합법적으로 대만으로 보낼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홍콩에서 처벌할 수도 없었다. 홍콩 형법은 ‘장소적 적용 범위’ 조항에서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홍콩 내에서 죄를 저지른 내국인과 외국인에게만 형법을 적용한다. 실행이나 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홍콩 영역 안에서 발생하면 형법을 적용할 수 있지만 판샤오잉 피살 사건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홍콩 당국은 그를 살인범으로 처벌할 수도, 대만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홍콩 당국이 궁여지책으로 그에게 적용할 수 있었던 혐의는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절도와 장물처리 혐의가 고작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찬퉁카이가 홍콩으로 도주한 뒤 판샤오잉의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해 사용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었다. 재판 막바지에 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 결과 지난 4월 29일 찬퉁카이에게 29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을 뿐이다. 그러자 홍콩과 대만 모두에서 ‘살인하고도 무죄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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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검찰은 2018년 12월 3일 찬퉁카이를 대상으로 최장 시효 37년 6개월짜리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10년이고, 20년이고 그의 송환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병을 인수하면 대만에서 재판해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한 셈이다.  이에 따라 홍콩 당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올해 3월 29일 ‘범죄인 인도 법안’을 마련하고 4월 3일 입법회 본회의에서 1차 심의를 했으며, 원래 6월 12일 2차 심의가 예정돼 있었다.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과 정부, 그리고 친중파 의원들은 ‘홍콩 사법체계의 허점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 법안을 계속 밀어 붙여왔다. 

 

이 법안은 공식명칭이 ‘2019년 도주범과 형사 사무 상호법률협조(수정) 조례초안(2019年逃犯及刑事事宜相互法律協助(修訂)條例草案)인데 줄여 부르는 말을 보면 홍콩인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공식적으론 줄여서 ’도범조례 수정초안(逃犯條例修訂草案)으로 불리지만 미디어와 일반인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도주범조례(逃犯條例), 인도조례(引渡條例), 중국송환조례(送中條例) 등으로 각각 달리 부른다. 


‘중국송환조례’라는 축약어는 홍콩인들이 이 법안으로 인한 민주인사들의 중국 송환과 처벌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홍콩의 민주파와 시민들은 이 법안에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은 물론 홍콩의 반중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잡아가면서 홍콩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것으로 우려한다.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영장이나 법원 판결 없이도 사람을 잡아가서 구금하거나 가택 연금을 하는 중국을 믿을 수 없다는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6월 9일 이 송환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에선 주최 측 추산 103만 명, 경찰 추산 24만 명이 참가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벌어진 시위로는 가장 크다. 홍콩의 역대 시위 중에는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150만 명이 벌였던 동조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홍콩 주민들의 이 법안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지난 6월 4일 홍콩에서 벌어졌던 6·4 천안문 민주 항쟁 30주년 추모 집회에 몰린 사람이 18만 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천안문 관련 집회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범죄인 인도 반대 시위에 그 5.7배가 모였으니 열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30년 전 베이징에서 벌어졌던 천안문 사태에 대한 추모 열기보다 당장 중국에 송환될 수도 있다는 공포,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중국의 압력에 홍콩이 휘둘릴 수 있다는 압박감이 홍콩 주민을 더욱 자극한 셈이다. 홍콩 주민들이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중국을 얼마나 두려워하는 지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수치는 없을 것이다.

 

2019 홍콩 시위 사태의 발단은 치정살인이었지만, 사태가 진행될수록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 투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시위 사태가 조용히 끝날 것 같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기사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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